2014년 11월 6일 목요일

[펌글] 대학인을 위한 철학논쟁 3 - 동양철학은 물질문명의 대안인가 中


인간과 자연이 같은가 다른가를 묻는 질문은 어쩌면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다. 왜냐
하면 편견과 오만을 버리고 자연을 바라본다면 인간도 수많은 자연 생물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전호근(성균관대 유학과 대학원 졸(철학 박사), 현재 성균관대 강사)

동양철학에서 나타나는 세계관은 서양의 그것 못지 않게 다양하다. 하지만 예외에
속하는 몇몇 철학자들을 제외하며 그 속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천인합일로 표현되는,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사유 형태의 전개이다. 멀리는 신화

세계관에서 시작하여 고대의 제자백가사상, 중세적 질서의 정당성을 대변했던
주자학은 물론이고, 가까이로는 근세의 양명학에 이르기까지 동양사상의 기저에는
자연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의식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른바 동양의
사상가라면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과 인간을
아우를 수 있는 통일적인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태도야말로 동양적 세계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 이와 같은 사유가 일반화될 수 있었던 원인은 동양인들이
마주했던 자연과 서양인들의 그것이 구체적으로 뚜렷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테면 서양문명의 발상지라 할 나일 강은 주기적으로 범람함으로써 일정 기간
동안은 비옥한 토지를 제공해 준다. 또 그리스 문명을 탄생시켰던 지중해의 기후는
온난할 뿐만 아니라 극심한 변화도 드물었다. 하지만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의
범람은 일정한 주기가 없다. 더욱이 대륙의 내부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모든 것을
황색으로 물들이고 수시로 한발이라는 대재앙을 몰고 온다. 곧 서양인들이 마주한
자연은 인간이 쉽게 대처하고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온순했던 반면, 동양의 자연은
인간의 저항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변화가 심했기 때문에 자연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자연을 이용하려는 의지보다는 오히려 거부할 수 없는 섭리로 인식하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인간 중심적
사고보다 자연 중심적 사고가 일반화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곧 동양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식의 오만함 따위는 보편화되기 어려운 명제일 수밖에 없
다. 



출처: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GCB7&fldid=QFs6&datanum=4&openArticle=true&docid=1GCB7QFs6420130810185040

도리, 1864년 3월 19일 , 파리

 진정한 위안은 십자가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되며, 그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해 모든 것을 순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요.